로마 근처 체르바라의 여성들
세 인물이 어두운 아치형 입구 아래 낡은 돌계단을 내려옵니다. 맨 앞에 선 여인은 흰 머릿수건 위에 구리 그릇을 얹고 있습니다. 맨발인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짐을 받치고 다른 손은 허리에 얹었는데, 마치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을 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듯합니다. 뒤에는 등을 보인 또 다른 여인이 커다란 구리 항아리를 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고, 오른쪽에는 흰 머릿수건과 붉은 몸통옷을 입은 작은 맨발 소녀가 조그만 바구니를 든 채 우리 쪽을 바라봅니다.
이 장면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인물들이 대각선을 이루며 차례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시선은 어느 한 사람의 얼굴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을 따라 움직입니다. 돌과 구리의 따뜻한 갈색, 황토색, 구릿빛 주황색이 세 여인을 하나의 빛나는 덩어리로 묶어 주는 한편, 옷에 번지는 흰색과 적갈색, 파란색의 색채가 각 인물을 또렷이 구분해 줍니다. 화가는 돌과 천을 똑같이 세심하게 그려, 거친 돌벽과 접힌 옷감이 그림 속에서 같은 무게감을 지니도록 했습니다.
이 작품은 1859년 파리 살롱에 출품되었고, 이후 1862년 런던, 1867년 파리, 1873년 빈에서 열린 국제 전시회에도 다시 전시되었습니다.
에르네스트 에베르는 1817년 그르노블에서 태어난 프랑스 아카데미 화가로, 현지 공증인의 아들이었습니다. 1835년 처음 파리로 가 법학을 공부했지만, 곧 예술에 대한 관심이 그를 조각가 다비드 당제와 역사화가 폴 들라로슈의 작업실로 이끌었습니다. 다만 그는 대부분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습니다. 초기 성공은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겨우 스물두 살에 파리 살롱에서 주목받았고, 1839년에는 성경 속 장면을 그린 《베냐민의 자루 속 요셉의 잔》으로 미술 아카데미의 로마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을 계기로 로마의 메디치 빌라에 머물게 된 그는 몇 년 동안 빛을 탁월하게 포착하며 로마 교외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말라리아》는 1850년 살롱에 출품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직접 목격한 일을 바탕으로 전염병을 피해 뗏목을 타고 달아나는 이탈리아 농민들을 묘사합니다. 낭만주의 양식으로 그린 이 작품은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온 에베르는 제2제정 시대에 인기 있는 화가가 되어 초상화를 다수 제작했고, 이탈리아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상징주의에 가까워지는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 원장을 두 차례 맡았으며, 1889년과 1900년 만국박람회에서 받은 대상과 레지옹 도뇌르 최고 등급을 비롯해 여러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의 교류 인물 가운데는 수십 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마틸드 공주가 있었고, 1880년에는 사진가 가브리엘 다케르만과 결혼했습니다. 의뢰 작품으로는 팡테옹의 모자이크 설계도 있었습니다. 에베르는 1908년 그르노블 인근 라 트롱슈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 집은 현재 박물관입니다. 그는 폴 트루이베르 같은 화가에게 영향을 미친 존경받는 아카데미 거장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가르침은 낭만주의와 새롭게 떠오르던 상징주의적 분위기를 이어 주었습니다.
이 캔버스는 1859년 파리 살롱에 전시된 뒤, 1862년 런던, 1867년 파리, 1873년 빈에서 열린 국제 전시회에도 출품되었습니다. 공공 컬렉션에 들어가기 전에는 나폴레옹 3세의 소유였으며, 그의 사유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목록에는 작품명이 프랑스어 표기인 《로마 근처 체르바라의 여성들》(로마 교황령)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으로, 표면은 매끄럽게 색을 섞어 표현했고 돌과 천의 질감은 더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인물들은 계단을 따라 대각선으로 늘어서 있으며, 갈색과 황토색, 구릿빛 주황색을 중심으로 한 따뜻한 색조에 흰색과 파란색이 포인트로 더해져 있습니다. 앞쪽의 여성은 소매가 넉넉한 흰 블라우스에 적갈색 몸판, 붉은 술 장식 띠, 파란 앞치마와 길고 옅은 색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등을 보인 여성은 흰 천을 두르고 초록색 띠가 달린 짙은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오른쪽의 어린 소녀는 흰 머릿수건과 붉은 몸판, 짙은 파란색 치마를 입고 작은 바구니나 그릇을 들고 있습니다. 캔버스에는 글귀가 보이지 않습니다.
목록에는 이 그림이 1862년 런던 전시회의 프랑스 부문에서 제38류 217번으로 전시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로마 대상을 받은 뒤, 그는 1840년부터 1844년까지 메디치 빌라에 거주하며 로마에서 지냈고, 그동안 로마 근교의 풍경을 많이 그렸습니다.
